AI 시대의 도래는 모두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주었지만, 특히 개발자라는 직업을 가진 나에게는 더욱 절실하게 다가온다. AI가 코드를 뚝딱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며, '과연 코딩이라는 기술이 여전히 유효할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부딪힌다.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나는 AI가 초급 개발자의 진입 장벽을 오히려 높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AI는 이미 단순하고 반복적인 코딩 작업을 놀랍도록 빠르게 해낸다. 이제 막 개발을 시작하려는 이들은 AI가 제공하는 편리함에 기대어 기본적인 코딩 경험을 쌓을 기회를 잃을 수도 있다. 과거에는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통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단단한 기초를 다졌다면, 이제는 AI에 의존하며 스스로 생각하고 고민하는 힘을 기르기 어려워진 것이다. 어쩌면 AI가 개발자 생태계의 허리를 잘라내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생각마저 든다.
어려서 나는 '백발의 코더'를 꿈꿨다. 평생 코딩을 하는 멋진 늙은 개발자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코더 자체가 없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개발자로서 살아남는 길은 무엇일까? 나는 그 해답이 시니어 개발자의 역할과 가치가 더욱 중요해지는 것에 있다고 믿는다.
AI는 주어진 문제에 대한 최적의 코드를 제시할 수는 있지만, 그 문제를 정의하고, 시스템 전체를 설계하며, 결국 사람과 사람이 소통하는 영역은 대체할 수 없다. 고객의 모호한 요구사항을 명확한 기술적 명세로 바꾸고,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을 효율적인 아키텍처로 구현하며, 다른 팀원들과 협업해 프로젝트의 방향을 잡아가는 일. 이 모든 것은 단순히 코딩 실력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젊었을 때는 '코딩' 그 자체가 곧 실력이었지만, 이제는 코딩은 기본 전제가 되어간다. 진짜 실력은 기획과 설계, 그리고 사람과의 소통에서 나온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역량은 수많은 프로젝트를 경험하고 실패하며 쌓아온 시니어의 몫이다. AI가 해결해 주지 못하는, 오랜 시간 동안 숙성된 '경험과 지혜'인 것이다.
나이라는 현실적인 벽 앞에 좌절할 때도 많다. 시니어 개발자로서 수많은 프로젝트를 이끌고 성공시켰어도, 때로는 나이 때문에 새로운 기회를 얻기 어려운 현실이 슬프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가치가 단순히 코딩 속도나 최신 기술 습득력에 있지 않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AI는 강력한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활용하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몫이다. AI 시대의 개발자는 단순한 코더가 아닌, 기술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문제 해결사'이자,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팀을 이끄는 '리더'가 되어야 한다.
어쩌면 내가 겪는 이 시대는 시니어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코딩은 AI에게 맡기고, 우리는 더 넓은 시야로 큰 그림을 그리며 진짜 가치를 창출하는 역할에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이가 아닌 경험과 지혜로 무장한 시니어 개발자들이 빛을 발할 수 있는 시대, 나는 그런 미래를 기대하며 오늘도 글을 써본다.